조선왕 독살설 [문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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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독살설 [문종편]

by 모두의상식 2021.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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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선의 왕 독살설 두 번째로 문종 독살설인데요

문종은 조선에 몇 안되는 적장자인 왕으로 세종대왕의 장남이며
세종대왕을 세자로서 30년을 보좌하면서 세종대왕의 업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문무에 모두 능했으나 임금에 오른 지 2년 4개월 만에 병사하게 되는 조선의 5대 왕이자
조선의 가장 위대한 왕이라 불리는 세종의 아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단종의 아버지입니다.

문종의 죽음에는 2가지의 의혹이 있는데
하나는 풍수지리, 또 하나는 병을 치료하면서의 의혹 등이 있습니다.


1. 풍수지리 (풍수사 목효지와 이현로)


여러분은 풍수지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재 우리는 풍수지리하면 일부 사람들이나 믿는 미신 정도로 치부하지만
조선시대에서는 잡과의 한 영역으로 조선의 필수 교양, 국가의 건물을 짓거나 묘지를 쓸 때 꼭 풍수지리를 따졌습니다.

문종의 죽음이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었다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 인물이 바로
목효지와 이현로라는 풍수사인데요

목효지의 신분은 노비였으나 풍수에 아주 능했다고합니다.
하지만 일개 노비가 한자로 된 책을 읽고 해석하여 실생활에 적용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풍수를 잘 알았다는 것이 의아한데 목효지에 대해서는 태종 때 목인해의 난이 발생했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목효지는 이 목인해의 자손이 아닐까 추측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목효지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세종 23년 문종의 아내 현덕빈 권 씨가 단종을 낳고 산후조리 중 사망하게 되어 무덤을 써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장지를 안산의 바닷가 근처로 선정을 하게 됩니다. 바닷가 근처는 현재 우리가 봐도 무덤을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으로 보이죠 그래서 목효지는 세종대왕에게 상소를 올리는데

"빈궁의 능소인 안산 고읍 땅은 내룡이 얕고 약하고 길로 끊어진 곳이 많아서 10여 군데나 되옵니다. "내룡이 약하고 약하면 낳은 아이가 녹아버린다"라고 상소문을 올립니다."

현재 빈궁의 장지는 낳은 아이가 빨리 죽게 되고 장자와 장손이 일찍죽는 땅이다 나쁜 땅 중에도 나쁜땅이다 라고 상소를 올리는데 이 상소를 받아본 세종은 장자와 장손이 일찍죽고 이제 갓 낳은 아이(단종)이 일찍 녹아 죽는다 하니 장지를 다시 살펴보라고 재조사를 시키는데 이때 수양대군(세조)이 조사에 참가하며 말하길 이자리는 좋은 자리라 주장하면서 방향만 조금 바꾸는 걸로 끝이 났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있고 난 후 세종과 문종이 잇달아 죽게되고

단종이 즉위하게 되는데 단종 즉위 후 이번엔 문종의 릉을 조성하려 하자 목효지가 또다시 상소를 올립니다.

"현릉은 주인은 약하고 객은 강하여 산의 근원이 막다른...... 정룡, 정혈이 아닙니다."

풍수에서 정룡은(장손) 방룡은(차자 이하)를 뜻하는데 여기서 문종의 장손은 바로 단종이죠
본인이 잘 안된다는 상소를 올리니 릉의 자리를 재조사시키는데 이때 또다시 수양대군이 참가를 하면서 목효지를 공격하면서 "목효지는 한쪽 눈이 안 보이는데 이것은 풍수사로서 굉장히 나쁜 자질의 장애이며 노비가 자신의 신분을 높이기 위해서 거짓을 말한다"라며 해당 자리에서 물까지 나옴에도 불구하고 정인지와 수양대군은 해당 자리를 밀어붙여 능을 조성하게 됩니다.
그러다 목효지는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고 나서 사형당하고 맙니다
풍수를 이용하여 문종과 단종의 왕위를 튼튼하게 하려고 했던 죄 때문에 죽임 당했다 봐야겠죠

 

 

또 한 명의 풍수 가는 이현로인데
단종 즉위년에 수양대군이 이현로를 길거리에서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구타한 이유는 이현로가 궁궐을 옮기자고 주장을 한 것 때문인데. 이현로의 주장은 풍수에는 좌청룡 우백호가 있는데
경복궁의 우백호는 인왕산으로 아주 높은지만 좌청룡은 아주 작은 산 만이 존재하는데 이 자리는 장남이나 장손이 쇠퇴하고 방룡이 잘되는 자리다라고 말하며 궁의 위치를 북악산 뒤로 옮기자고 주장을 하니 수양대군이 이것을 듣고 화가 나 백주대낮에 벼슬아치를 구타를 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수양대군이 얼마나 왕위에 욕심이 있었는지 알 수 있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후 왕 중에 방계의 자손으로 왕위에 오른 왕은 그나마 임기를 어느 정도 채웠지만 장손으로 왕위에 올라 멀쩡히 임기를 보낸 왕은 없다는 것입니다.


2. 어의 전순의


어의 전순의는 미천한 신분에서 어의까지 올라간 실력이 있는 인물인데요
이러한 인물이 문종의 병을 치료할 때만큼은 이해할 수 없는 치료를 진행하게 됩니다.

문종이 처음 종기가 났을 때 치료를 잘못해서 위태로울 뻔한 적이 있어 전순의를 어의에서 탄핵시켰다가
문종이 왕에 즉위하고 나서 다시 복직시켰는데 사헌부에서는 복직을 반대를 했지만 문종은 일부로 그랬겠느냐 하며 복직시켜줍니다.
그러고난 뒤 문종 2년에 또다시 종기가 나는데 문종은 몸이 불편하니 외국과의 외교에 관한 일을 제외하고는 대신들에게 국무를 일임하며 와병 생활에 들어갔다 얼마 뒤 사망하게 됩니다.

이때 문종의 치료기록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치료가 지속됐는데
어의 전순의는 매일같이 대신들에게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졌습니다. 라며 말했는데 대신들은 당연히 어의가 괜찮다고 하니 괜찮은가 보다 하고 있던 차에, 어느 날 전순의가 또다시 대신들에게 말하기를

"임금의 종기 난 곳이 녹즙이 흘러나와 침이 저절로 뽑힐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 하니, 문안하던 여러 신하가 모두 기뻐하며 물러갔다"

 

하지만 문종의 병세는 나아지기는커녕 갑자기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지며 결국 며칠 뒤 문종이 갑작스레 사망하게 됩니다.
문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헌부와 의금부에서 전순의의 치료과정을 조사했는데
어의의 치료기록을 보니 굉장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발견됩니다.
당시에 종기를 치료할 때는 기름진 음식은 올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기름기가 많은 꿩고기를 올렸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당대 최고의 의원이 이 부분을 몰랐을리 없을 텐데도 지속적으로 꿩고기를 올린 사실이 밝혀지니 의금부와 사헌부는 전순의를 사형시켜야 된다 라고 말했으나
수양대군과 그의 최측근들의 반대로 단종이 차마 사형시키지 못했습니다.

이후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고 난 뒤 전순의는 좌익 원종공신 1등이 됩니다.
문종을 말도 안 되는 치료로 죽음에 이르게 하여 사형까지 위기에 몰렸던 전순의가 계유정난 이후 공신이 되었다는 것은 문종의 죽음이 평범한 죽음이 아니었다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됩니다.

오늘의 내용은 이덕일 님의 조선왕 독살사건이라는 책을 참고하였습니다.

 

조선 왕 독살사건 1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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